에스겔서 3장에 보면 선지자 에스겔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3:1~3) 선지자 에스겔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더니 그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귀한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에스겔은 어떤 기록된 말씀을 먹었기에 그렇게 입에 꿀 같이 달았을까요?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었을까요? 세상의 복을 비는 말씀이었을까요? 칭찬의 말씀이었을까요? 어떤 말씀을 먹었기에 그토록 입에서 달았을까요? 바로 앞의 2장의 말씀에 에스겔이 먹은 기록된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9~10) 에스겔 선지자가 먹은 말씀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었습니다. 회개와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그 입에서 꿀과 같이 달았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한 가족된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이 시대에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할 부흥이 아닐까요? 오늘날은 감정을 자극하여 웃고 울리고 자신의 귀를 가려주고 듣기에 편하고 세상의 헛된 소망을 빌어주는 설교가 인기입니다.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설교, 마음에 찔림 없이 들을 수 있는 설교, 그런 설교에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 30:10)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욕으로 여겼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렘 6:10)
저의 면류관이요 기쁨이요 자랑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 가운데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려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를 발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고 우리의 심령의 죄를 드러내고 고발할 때 그 심령의 고통가운데서도 그 말씀이 그 입에 송이 꿀과 같이 달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아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그 심령에서 역사하여 새 생명의 역사를 이루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풍조는 자신을 향하여 책망하고 교훈하는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우리를 책망하고 교훈할 때 송이 꿀과 같이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심령이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아멘!
주님과 여러분으로 인해 행복한 목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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