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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어울리는 말말말

  • 6월 6일
  • 3분 분량

어제 문득 산책을 하는데 성도에게 어울리는 세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니 “감사합니다.”이며, 조건없는 용서로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용서합니다.”이며,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었으니 “사랑합니다.”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말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번지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는 과일박쥐류라고 합니다. 박쥐에 의해 에볼라가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지 않은 말을 옮기는 박쥐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남의 허물과 거짓된 비방과 추측의 말들을 옮기는 숙주가 되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 17:9.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교만한 눈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잠 6:16-19.


오늘 새벽에는 말에 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말 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지만 말에 대한 결과에는 돈으로 지불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kbs 아침마당의 오랜 진행자였던 김재원 아나운서가 쓴 [말꽃]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말은 꽃인가요, 아니면 못인가요”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말실수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말은 그냥 말 무덤에 묻어버려야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말이 그 사람 마음에 묻혀버렸습니다.

〈말실수의 대가〉 중에서


우리는 종종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이미 고집과 두려움, 욕망, 자만심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그 마음에서 길어 올린 말은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마음이 흔들릴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환경이 내 마음을 흔든다면, 말을 아껴야 할 때입니다. 〈말을 깨끗한 샘에서 길어 올리십시오〉 중에서


나에게 무작정 화를 내거나, 무조건 비난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몰아세우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태도는 이상할 만큼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나도 똑같이 화를 내고 비난하며 몰아세우면 그는 자신의 언행을 잊은 채 순식간에 ‘피해자’가 되고 나는 ‘가해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땐 그를 한 명의 배우로 여기고 조용히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그는 더 폭주해 자신의 무례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거나 아니면 무례함을 깨닫고 서서히 잦아들 것입니다. 무례한 사람 앞에서 가만히 있는 일, 그건 세상에서 세 번째쯤 어려운 일입니다. 〈무례한 사람 앞에서 반응하지 않는 용기〉


꽃 같은 말 한마디를 하려면, 금 같은 말 한 문장을 남기려면, 꽃을 피우는 정원사의 노력과 금을 제련하는 장인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숙련된 대장장이의 담금질로 날 선 병기가 만들어집니다. 그 손의 굳은살과 손톱 사이에 배인 녹(綠)이 그 경험을 증명합니다. 적확한 단어의 선택, 군더더기 없는 단어의 배열, 밀도 높은 문장 구성, 문채(文彩)에 배어나는 성품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말, 제발 그냥 하지 마세요. 〈말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 중에서}}


이 글들을 읽으면서 저의 언어생활을 돌아봅니다. 제가 했던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말을 돌아봅니다. 말은 씨앗입니다. 내 말을 들은 그 사람의 마음에 말의 씨앗이 심겨질 때 아름다운 꽃이 필까요? 아니면 가시나무가 자랄까요? 제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는 좋은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말, 참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칼을 다루듯이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말을 할 때는 숙고해야 합니다. 숙고라는 한자어는 익을 숙(熟, 충분히 익다, 깊어지다, 충분히 되다) 생각할 고(考, 생각하다, 헤아리다, 살피다) 말은 충분히 익히고 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헤아리고 살핀 후에 그 다음에 말해야 합니다. 일단 입에서 말이 내뱉어지는 순간 말은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듣기는 속히 해도 말하기는 더디해야 합니다. 그 때 급하게 한 말을 몇 시간 후나, 하루가 지난 후에 보면 그 말을 하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가 생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말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품격이라는 한자어를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품격(品格), 품 자가 입 구(口) 세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품격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모가 아름답고 멋져도, 아무리 세련된 옷을 입었다 해도,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그 사람의 말이 아름답지 못하면 품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이 그 사람입니다. 품격있는 말을 하는 품격있는 사람이 됩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혀가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양약이 되는 보약같은 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다시 오실 우리 주님과 주님 안에서 영원한 가족된 여러분으로인해 행복한 목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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