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고통 가운데 주신 놀라운 은혜와 사명

지난주에 치통이 너무 심해서 고생을 조금 했습니다. 특히 화요일 새벽은 어찌나 고통이 심하였는지 새벽에 일어난 이후 새벽기도회를 가기 위해 교회까지 차를 운전하는 동안 제 평생에 제일 힘든 고통을 느낀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차를 중간에 세울 수도 없고,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고통 속에서도 교회까지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물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에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제 마음에 고요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들려왔습니다.

‘이성웅 목사야, 바로 이 고통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영혼들의 고통이란다.’ 주님이 없어, 주님의 말씀이 없어 영혼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혼들의 고통이 제 마음에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경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악을 범한 후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역대상 4장에 기록된 유다의 족보에 등장하는 ‘야베스’ 그는 그의 어머니가 고통 속에 수고로이 낳았다는 이름의 의미를 가진 자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복을 아룁니다. 그 아룀 중에 “나로 죄악에서(환난에서) 벗어나 내게 고통이(근심이) 없게 하소서”라는 간구의 내용이 있습니다. 유다의 자손으로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십니다. 우리 주님은 죄 악가운데 고통당하고 있는 영혼을 그 사망의 고통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세에 주의 말씀이 그 심령에 없어 고통하는 영혼들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딤후 3:1) 말씀이 그 심령에 없으니 대신 차지한 것이 우상들 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중한 존재들, 즉 자기 자신, 돈, 자식,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입니다. 이런 우상들의 존재는 영혼들로 하여금 고통에 고통을 더하게 합니다. 그 우상들 때문에 분노와 혈기와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일어납니다. 비난과 정죄와 원망과 불평이 일어납니다. 육신의 질병의고통이 진통이라는 아픔으로 표현되듯이 영혼의 고통은 분노, 미움, 시기, 질투, 혈기, 비난, 정죄, 판단, 수군거림, 험담, 이간질, 음란, 살인 등으로 표현됩니다. 가인은 그 영혼이 고통스러워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어떤 이는 그 영혼에 고통이 더해져 심한 시기심으로 사람들을 거짓으로 모함합니다.

저의 육신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영혼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구원할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 분의 말씀뿐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말세에 사람들의 귀가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세상 이야기를 따르며 자기의 귀를 가려주는 부드러운 말씀만을 원한다 하여도 고난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오실 사모하는 우리 주님과 주님 안에서 영원한 가족된 여러분으로 인해 행복한 목사 드립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그 날을 준비하며 오늘을 깨어있는 삶

오늘도 찌뿌둥한 날씨의 연속이네요. 자칫 몸도 마음도 찌뿌둥해 질 수 있는 이 순간.. 감사로 저의 몸도 마음도 찰랑~ 찰랑~ 채우니 한결 가벼워지는 듯합니다. 어제 오후에 며느리가 저희가 사는 동네가 벌써 물이 많이 차서 허리케인이 오면 전기가 끊길 수 있다고 먹는 생수를 준비해 놓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동네는 수돗물이 아니고 우물물이거든요.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신약성경을 일독하면서 참 마음이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먼저는 바리새인들과 서 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할 때 그 자리에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자신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함께 합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

주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요즘 말씀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매일같이 깨닫고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보내드린 카톡의 말씀을 읽고 한국과 타주에서 보내주신 글들의 내용 중에 일부를 소개합니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데도 항상 부족한 것 같은 생활에 감사보다는 더 채우려고 하는 욕심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람쥐처럼 먹을 양식을 땅속에 여기 저기 묻어 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양쪽 볼에 가득

bottom of page